병원 입구에 놓인 소독 스프레이 위에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다.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입니다. 살균력이 강한 소독제로 손을 씻으세요.’
매해 겨울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손을 씻는 건 독감을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점막에 번식하기 때문에 점막이 없는 손을 살균할 필요는 없다.

손에 붙은 바이러스는 물로만 씻어도 없어진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근처 병원에 갔을 때 이미 의사와 이 이야기를 나눴었다.
“따뜻한 물로 씻기만 해도 독감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찬물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독감 바이러스가 충분히 씻겨 나갑니다.”

의사는 맥이 풀릴 정도로 쉽게 대답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고 흡족해하며 복도로 나갔는데 손 씻는 곳에 약용 핸드솝이 비치돼 있었다.
‘방금 찬물로도 충분하다고 했으면서 왜 놓아둔 거지?’

순간 궁금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약용 핸드솝은 환자를 위해 준비해둔 것이었다. 병원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1년 전의 나였다면 세면대에 비누도 준비해두지 않은 병원은 위생 관리가 철저하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무지(無知)란 무서운 것이다. 실은 나도 집 화장실에 약용 핸드솝을 놓아둔다. 손님용이다. 병원과 똑같은 마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독감을 예방하려면 손을 자주 씻어야 합니다. 최근 알코올 소독제를 비치한 직장이 늘고 있는데 알코올 소독제는 독감 예방에 효과가 있습니다.’

청결한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현대인은 살균·항균 제품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항균 비누, 항균 물티슈를 비롯해 이불, 속옷, 타월, 장난감, 침대 시트에까지 향균 성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저항력이 약한 영유아나 어린이에게 항균 제품만 사용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만약 중요한 피부상재균까지 제거한다면?

2012년 7월 11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기는 물건을 입에 넣는 행동을 통해 상당수의 균을 접하면서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같은 달 30일자 신문에는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가정의 아이가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제목으로 관련 연구 결과가 실렸다.

동물과 접촉하면서 세균에 노출되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개가 실외와 실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가정일수록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는데, 그 이유가 개가 바깥에서 더러워져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방세제도 항균 제품을 많이 사용하지만 도마를 소독하는 데는 팔팔 끓는 물을 끼얹는 것으로 충분하고, 그릇도 기름기 외에는 물로만 씻어도 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살균·항균 제품을 쓰는 이유는 병원성 세균은 물론 곰팡이와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세균이나 곰팡이는 대부분 물에 쉽게 씻겨나가고 충분히 말리면 확실하게 제거된다. 세탁기, 비누, 세제, 도마, 그릇, 내복까지 항균 기능으로 애써 무장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출처 : <피부도 단식이 필요하다> (도서출판 전나무숲)

저자 : 히라노 교코

1945년 출생. 오차노미즈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튜빈겐대학에서 수학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독일어 번역작가로, 발터 뫼르스의 소설 《캡틴 블루베어의 13과 1/2 인생》을 번역해 2006년 독일 정부로부터 레싱번역상을 받았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난징의 진실(南京の眞實)》, 《균열(均熱)》, 《토니오 크뢰거》 등이 있고, 저서로는 《단가로 읽는 괴테(三十文字で詠むゲㅡテ)》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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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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