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두고 보면 활성산소는 몸 곳곳에 나쁜 짓만 일삼는 천하의 악당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활성산소가 우리 몸에 무조건 해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백혈구에 있는 NADPH 옥시다제(NADPH oxidase)라는 효소는 강력한 활성산소를 만들어 몸에 침입한 병원균을 물리친다.

상처 부위를 살균⋅소독할 때 자주 쓰는 과산화수소수는 대표적인 활성산소인 과산화수소를 물에 녹인 액체다. 이를 보더라도 활성산소가 단지 인체에 손상만 주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활성산소가 발생할 때 우리 몸이 받는 ‘손상’이나 ‘해’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실험 결과가 있다. 효모에 과산화수소수를 부으면 보통은 효모가 모두 죽는다. 그런데 효모에서 아포토시스를 촉진하는 Ste20이라는 효소를 변이시켰더니 과산화수소수를 부어도 죽지 않았다

이 결과를 보면 과산화수소수 자체에는 살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산화수소수는 단지 “자살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에 불과하다. 그 신호를 감지한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아포토시스’를 떠올려보자.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서 꼬리가 없어지는 것이나 인간의 손가락이 다섯 개로 갈라지는 것도 발생과 분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기 위해 세포가 스스로 죽어 사라진 결과다. 이를 보더라도 세포 자살을 유도하는 ‘세포자살 유전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올챙이의 꼬리 세포가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신의 개체를 위해서다. 꼬리 세포가 없어져도 다른 세포가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과산화수소수를 부었을 때 일어나는 효모의 자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효모는 세포가 하나 밖에 없는 단세포생물이기 때문이다. 세포가 죽으면 유전자를 남길 수 없는 단세포생물에조차 아포토시스가 프로그램 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장수유전자 생존전략> (전나무숲 출판사)

● 지은이 _  쓰보타 가즈오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 안과 교수로 일본항노화의학회 부이사장, 잡지 〈안티에이징 의학〉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95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80년에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일본과 미국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1985년부터 미국 하버드대학에 유학하여 2년 뒤 각막전임의(clinical fellow) 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에는 몇몇 뜻 있는 의사와 함께 일본항노화의학회를 설립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iPS 세포를 만들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수와의 공동 연구 등을 통해 안과 분야에 생명공학의 첨단 기술을 응용하고자 애쓰고 있다. 저서로 《불가능을 극복하는 시력 재생의 과학》, 《늙지 않는 생활법》, 《기분 좋게 생활하면 10년 오래 산다》 등이 있다.

● 감수 _ 오창규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Friedrich-Alexander-University(Erlangen)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독일 Georg-August-University (G?ttingen)에서 분자유전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주)마크로젠과 (주)녹십자에서 바이오산업에 종사하였으며, 현재 (주)앰브로시아와 포휴먼텍(주)의 대표로서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게놈 엔지니어링 기반의 생명공학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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