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오늘날처럼 포식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근래 50년 정도를 뺀 나머지 299만 9950년 동안은 빙하기, 가뭄, 홍수, 지진, 화재, 전쟁 같은 천재지변 때문에 인류의 선조는 늘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몸은 굶주림에는 익숙하지만 포식과 과식에 대해서는 대처하기 어렵게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인류가 비만, 고지혈증, 고혈당(당뇨병), 고요산혈증(통풍), 고염분혈증(고혈압) 같은 체내에 들어온 영양물을 처리해내지 못하는 병에 쉽게 빠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Thai Crispy Pancake (Kanom Buang) / ขนมเบื้องไทย by AmpamukA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이러한 사실은 몸속 호르몬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속 60개 조의 세포는 거의 100%가 당분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살아가므로 저혈당 발작(떨림, 손발 저림, 실신 등)은 일어나지만 저단백 발작이나 저지방 발작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복으로 저혈당 상태가 되었을 때는 혈당을 높이기 위해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코르티솔, 글루카곤, 성장호르몬, 티록신 등 10가지 정도의 호르몬이 분비되지만, 포식을 하여 고혈당에 빠지면 혈당을 내리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은 인슐린뿐인 것이죠.

지나치게 많이 먹는 식습관으로 질병을 앓기 전에 몸은 본능적으로 “제발 더 먹지 말아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것이 위염이나 장염으로 인한 식욕 부진과 구토입니다. 그럼에도 소화제나 정장제(장의 기능을 바로잡는 약)를 먹어서 어떻게 해서든 음식물을 위장으로 집어넣으려고 애쓰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Belly's Gonna Get Ya! by kagey_b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과식을 해서 몸 안에 잉여물과 노폐물이 많아지면 그런 쓸모없는 물질들을 청소하기 위해 박테리아균이 침입하여 염증을 일으키고, 그 결과 우리 몸은 발열과 식욕 부진을 통해 ‘먹는 것이 괴롭다’고 절규를 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이나 의사는 병과 싸울 체력을 다져야 한다면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라고 말하니, 당연히 병이 악화될 뿐 나아질 리 없습니다.

미국의 미네소타대학 의학부 교수 M. J. 마레이 박사는 1975년 사하라 사막을 방문하여 당시 기근을 겪고 있던 유목민들에게 식료품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식료품을 공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돌연 말라리아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박사는 이런 사실을 단서로 삼아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사례를 고찰 및 검토했습니다.

● 기근에 시달리는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유목민에게 식료품이 공급되자 말라리아, 브루셀라병(브루셀라균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 전염병), 결핵 같은 감염증이 생겨났다.

● 중세 영국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을 더 많이 공격했다.

●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인플루엔자는 영양 공급이 충분한 사람들의 사망률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 제2차 세계대전 중 과밀 상태에 있던 캠프에서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의 장티푸스 발병률이 가장 낮았다.

이런 사실을 통해 마레이 박사는 음식물의 영양소가 몸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병원균을 분열하거나 증식시키는 데 이용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기아가 병원균의 감염을 억제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죠.

지나친 영양 섭취는 백혈구의 활동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의 카로린스카대학에서는 외과 수술을 한 환자에게 영양 높은 수액을 투여했더니 수액의 투여량이 많을수록 폐렴이나 담낭염, 수막염 같은 감염증이 쉽게 유발되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포식한 백혈구가 게을러지기 때문입니다. 면역력의 주인공인 백혈구는 혈액 안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면서 혈액 안의 당과 지방 등을 먹어치우고, 혈액 안과 몸속 노폐물이나 병원균 같은 유해물을 탐식하면서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혈액 안에 당분이나 지방 같은 영양 물질이 늘어나면 백혈구도 그런 물질을 마구 먹어대서 배부른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백혈구는 더 이상 병원균이나 암세포를 먹어치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그냥 보아 넘길 일이 아닙니다. 혈액 안에 당분이 지나치게 많은(고혈당) 상태인 당뇨병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폐렴·결핵·방광염·피부염 같은 감염증에도 쉽게 걸리고 암의 발생률도 높은데, ‘당뇨병은 합병증이 무섭다’는 말도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마찬가지로 비만인 사람이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온갖 병에 걸릴 감염률이나 사망률이 높은 것도 영양 과잉으로 백혈구의 탐식력(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은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병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건강을 유지하면서 생명의 맥을 잇습니다. 야산을 걷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너구리를 만난다거나, 뇌졸중 때문에 반신불수인 상태로 걷는 여우를 봤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몸져누워 있는 족제비를 본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이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면 몰래 몸을 숨겨 조용하게 죽어간다. 드물게 병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더라도 먹이를 먹지 않거나 열을 냄으로써 스스로 병을 고치는 것이죠.  우리 인간도 동물입니다. 식욕 부진(소식)이야말로 인간의 건강을 지켜주는 최고의 명의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몸이 원하는 장수요법>, 이시하라 유미 지음, 도서출판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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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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