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로 인한 일본의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 원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 …. 그러나 우리가 느껴야할 것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언제든 우리도 그와 같은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일본에 쓰나미가 발생한 후 현장으로 달려가 생생한 기록을 한 한국의 사진작가 류승일씨가 집필한 <쓰나미, 끝나지 않은 경고>를 통해서 그 처참한 상황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야하는지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편집자 주.

차를 타고 계속 해안 쪽으로 들어갔다. 몇 킬로미터쯤 더 들어가니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한 마디로, 도시가 없어졌다. 참 예쁜 해안 마을이었겠다 싶은데 마을이건 도시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눈 뜨고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멍해지고 눈알이 얼얼해졌다. 나도 나름 어렵고 힘든 극한의 상황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건 그동안 봐왔던 상황과 너무나 달랐다.

천천히, 조금 더 해안 쪽으로 들어가다 끊긴 교각을 발견했다. 지도상의 45번 국도 교각이다. 더 이상 차량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끊긴 교각 옆으로는 제 멋대로 휘고 틀어진 철로가 보였다. 나는 파손된 철둑길을 이용해 더 깊이 이동했다.

산길을 따라 100여 미터 걷다 보니 산 아래로 집이 한 채 있었고, 노부부 둘이서 쓰나미에 쓸려 내려간 집기들을 집 앞 개울에서 주워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끊긴 교각과 하천 너머에는 산 아래를 중심으로 나무조각과 철물 자재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참혹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생존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끊어진 교각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고, 바닷물과 함께 쓸려 올라와 쌓인 뻘로 길이 되어버린 곳을 이용해 하천을 넘어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안에는 자위대 대원들이 대형 불도저가 밀어낸 폐허더미 속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시신 수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 하나 표정 이 없었다. 이런 처참한 현장 앞에서 표정을 찾는 것 자체가 상당한 사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을 자위대 대원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는 중장비의 엔진 소리에 묻혔고 나는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촬영을 계속 해나갔다. 자위대 대원들은 사진 촬영이 그렇게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피곤하고 귀찮아서 나를 방치해두는 듯했다.

중장비 뒤에서 한참을 촬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장비가 멈추더니 지휘관으로 보이는 군인과 중장비 운전병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 몇 분 후, 나는 자위대 대원들에게 이끌려 현장에서 쫓겨났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순순히 차분하게 자리를 이동했다. 현장 촬영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일본 사람들의 정서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을 빌미로 실례를 범할까 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이는 길로 똑바로 걸어갔다. 마음이 심란했다. 뭐라 표현하기도 어렵고, 싸늘한 공기를 타고 내리쬐는 햇살은 날카롭고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슬프다 못해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 한동안 여기저기를 실성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그렇게 나는 피해 지역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수색을 위해 중장비가 청소해놓은 도로 역시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반경 1킬로미터 지역은 멀쩡하게 서 있는 건물이 없었다. 그나마 이 곳에서 어느 정도 규모를 자랑했을 법한 병원과 백화점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만 그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백화점으로 추정되는 건물 가까이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 건물, 백화점이 아닌 기차역이다. 그리고 대형 어망에 뒤덮여 있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그 건물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 아주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젊은 학생이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폐허가 들어찬 건물 안을 들여다보려 시도하고 있었는데, 물어보니 그 건물 1층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단다. 그리고 쓰나미가 밀려올 때 집 안에 다른 가족들이 있었다고 했다. 젊은이는 계속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내부는 이미 쓰나미를 타고 밀려 들어온 부유물과 건물 잔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쓰나미 경보가 울린 후 대피할 시간도 없이 들이닥친 대형 파도.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파도는 무엇 때문에 이 마을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을까. 어리석은 질문임을 알면서도 자꾸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한참 동안 말 없이 건물 근처를 배회하다 그 자리를 벗어났다.

류승일

고등학생 시절, 학교 앞에서 방독면을 쓴 채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의 모습에 매료되어 보도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해외 사진 에이전시의 계약직 사진가로 활동하며 사진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학을 떠난 후 6년간은 서울에서 외신사 사진기자로 근무하면서 국내외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했으며, 국내 인터넷 뉴스 매체와 시사 주간지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현재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일대 주요 사건, 사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류승일 지음, 도서출판 전나무숲


                      ※ 인터넷 서점 및 전국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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