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스폿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건강한 자아를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자아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개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아는 의식의 영역이고, 기억과 사고, 판단, 관심, 인식, 현실 검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무의식으로 가는 길을 제공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해하기 벅찬 개념인 것은 확실하다. 

최고로 노련한 정신과 의사들조차 자아의 중요성을 간과할 때가 있다. 그들은 종종 자아가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아의 기능이 떨어져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면 추리력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 역시 잊어버릴 때가 있다. 

자아가 하는 기능 중 하나는, 어린 시절에 받은 인상과 지각들이 남겨놓은 기억의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외부 세계를 관찰해 순간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보관하는 것이다. 또 다른 기능은 외부 세계를 반영해서 사람들이 현실의 경험에서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이러한 기능은 결과적으로 불행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도 자주 우리는 자아에 접속할 체력과 지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래서 건강한 자아의 출현을 가로막는 이드(id)30나 초자아(super ego)에 맹목적으로 기댄다. 자아는 자기가 ‘아는’ 것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이용하기 편한 것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아가 공포를 몰고 온다고 생각하지만, 자아는 진정제 효과를 내는 논리나 추론도 마치 수행 비서를 대동하듯이 함께 데려온다. 

자아의 기능은 본능을 인식하는 것에서 통제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자아는 정보를 흡수해 통합하고, 파괴적이고 나쁜 것에서 유용하고 좋은 것을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자아는 비현실적인 것들 사이에서 현실적인 것을 구별해내는 능력이 있다. 

컨버그에 따르면, 자아는 기억에 저장된 경험의 잔재들을 뒤적이면서 욕망과 행동과 자꾸 뒤로 미루고 싶은 생각들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자아는 이드 안에서 절대적 자리를 차지하던 쾌락원칙을 몰아내고 더 큰 안정과 성공을 약속하는 현실원칙을 권좌에 앉힌다.

이드와 현실 간의 중재를 시도하면서 자아는 지칠 줄 모르고 요구해대는 이드와 초자아에게 가끔씩 반응해주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럴 때마다 회복력이 떨어진다. 

어떤 사람이 최고의 지성을 가졌는지를 시험하려면 과연 그 사람이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품고 있는 상태에서도 여전히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면 된다.

자아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공격성을 인식하고 이를 승화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귀중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는 이드 지향적인 공격성과 관련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공격성을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며 본능적인 충동을 더욱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배출구로 돌리는 방법으로 보았다. 베토벤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괴로움을 훌륭한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현실검증 능력을 기를 필요도 있다. 현실 검증은 객관과 주관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현실 검증은 자신과 상대방을 구별하는 능력이고 자신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다. 

어떤 자기애성 내담자는 진료 약속을 잡으려고 전화를 하고서는 자신이 불가능한 시간만을 쭉 늘어놓았다. “1시에는 네일숍에 가고, 2시에는 운동을 하러 가고, 3시에는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4시에는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해요.” 그럼 언제 시간이 괜찮은지 물어보니,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일정을 살펴보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를 성찰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런 행동이 상대방을 얼마나 짜증나게 하는지 알려줄 ‘관찰하는 자아(observing ego)’가 결여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심리치료사란 바쁜 사람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이 별로 없고, 또 자기 마음대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정보를 정리하지 못한다. 

최소한 이 두 가지만 할 수 있다 해도 브이스폿이 주는 충격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상처받는가>

저자 : 조앤 래커 (Joan Lachkar)

정신분석학 박사로서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부부나 연인 관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연구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실제로 심리치료사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부부, 연인들과 상담하며 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지, 왜 상처받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탐구했다. 그 결과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현재의 관계를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이 자신의 원초적 상처를 깨닫고 그것과 화해함으로써 감정을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남부 캘리포니아 정신분석연구소 회원이자 마운트세인트메리 대학 외래교수이며, 『정서적 학대(Journal of Emotional Abuse)』 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자기애성과 경계성 커플』 『학대의 여러 얼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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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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