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방어기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 마음은 너무열려서 불친절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릴 적 집이나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때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방어기제가 어린 나를 보호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방어기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방어기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 발전을 방해합니다. 이번 회부터는 내 마음 속에서 잘못 뿌리 내리고 있는 방어기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소극적 공격성 

분한 마음이나 적대감, 상처받은 기분을 관련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얼마 전 다툰 친구와의 약속을 일부러 깨는 것, 점점 예뻐지는 여자 친구가 자기 곁을 떠날까 봐 외모를 가꾸는그녀의 노력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것,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을 그 앞에서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그 대신 동료들을 모아놓고 상사를 비난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공격성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분노를 지연행동, 무응답, 무반응, 시선 피하기, 연락 끊기, 응답하지 않기 등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가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소심하게 공격적이야”, “그 여자는 정말 소극적인 공격성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니까”. 당신도 다른 사람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을지 모른다. 왜 그랬는가? 그 사람의 어떤 행동 때문에 그렇게 부정적인 표현을 썼는가?

Boneless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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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사람이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보였고, 당신은 그 사람의 그러한 행동을 더는 참고 봐줄 수 없겠기에 ‘소심하게 공격적’, ‘소극적 공격성’ 같은 표현을 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그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 최근에 말다툼을 한 친구와 저녁 식사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을 1시간 앞두고 친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오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였다. 당신은 그 친구가 자신과 다투고 난 뒤에는 항상 약속을 펑크 낸 것을 떠올리며 “참 소극적으로 공격하네”라고 중얼거렸다.

● 몇 년 동안 알뜰하게 돈을 모은 끝에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신과 자매이자 라이벌인 동생을 새집으로 초대했는데, 동생이 집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집이 작네. 괜찮은 동네에 좋은 집을 살 수 있는 날이 언젠간 오겠지.”

● 동네 사람 중 누군가가 익명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는 공원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갔다며 상스럽게 비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적이 없다. 누명을 써서 억울하고 짜증이 났지만 편지 주인의 간접적인 공격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가 없었다. 익명의 편지이기 때문에!

● 시어머니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집을 둘러보시고는 ‘친절하게도’ 당신 편을 들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집을 제대로 정리하면서 사는 건 당연히 어렵겠지.”

● 남편은 출근할 때면 매일 “저녁 6시 30분에 퇴근해서 집에 바로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8시나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 아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도 “특별한 날이니까 저녁 시간에 맞춰서 와달라”고 부탁하면 남편은 “당연하지”라고 말하고 출근하지만, 역시 9시가 돼서야 집에 와서 얄팍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친구, 동생, 익명의 제보자, 시어머니, 남편… 모두 소극적 공격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적대적 태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이든(질투심에서든,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서든, 누군가와 너무 가까워지거나 그 사람에게 너무 의존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든) 자신의 악의적인 기분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면에 숨어 있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드러낼 때는 진짜 감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친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 영향으로 혐오감, 회한, 자기회의, 자기혐오 등의 불쾌한 기분을 느끼면서 자신은 혼자이며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고, 자신이 어느 정도 사랑받고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 안에서 울려 퍼지는 감정적 진실과 싸운다. 위협받는 기분을 느끼거나, 실망하거나,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상대방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며 차분하게 대립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다뤄본 경험이 별로 없고 자신이 화를 냈을 때 벌어질 결과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소극적 공격은 ‘어쩌다 하는’ 실수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 방식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 방어기제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에서 발견하기가 더 쉽다(당신의 소극적 공격성에 대해서도 곧 다룰 것이니 너무 안심하지는 마라). 소극적 공격성을 지닌 사람은 ‘웃으면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미묘하게 당신을 공격한다. 아니면 습관적으로 늦거나 자꾸 뭔가를 잊어버리면서 마치 문제가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듯이 행동한다. 당신은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뭔가 기분이 찜찜하고 화가 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소극적 공격성을 좀 더 분명히 감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당신은 방어적이 되고,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했다면 이미 당신은 소극적 공격의 대상이 된 적이 있는 것이다.

            출처 :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 도서출판 전나무숲

저자 : 매릴린 케이건 (Marilyn Kagan)

로스앤젤레스에서 25년 이상 개업의로 일해온 공인임상사회복지사(LCSW)이다. 전문 심리치료사와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자격).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남부 캘리포니아 정신분석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수련했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배우로도 활동했던 매릴린은 미디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심리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로스앤젤레스의 KFI 방송국에서 8년간 인기 토크쇼를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고민을 세심하게 상담해주었으며, 3년간 진행한 「매릴린 케이건 쇼(The Marilyn Kagan Show)」는 에미상 수상작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외에 E! 방송국의 「토크 수프(Talk Soup)」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주요 프로그램에 해설자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저자 : 닐 아인번드 (Neil Einbund)

공인임상심리치료사이자 결혼 및 가족 치료 전문가. 1988년부터 개업의로 일하며 가족 관계, 결혼 생활, 중독, 이혼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상담치료를 하고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1988년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주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에 있는 안티오크 대학교(Antioch University) 심리학과 석사 과정에서 교수로도 일했다. 지난 20년간 미국 유대대학교에서 부부 상담 프로그램인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하여’를 진행해왔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슬픔 치유 모임’을 주말마다 운영하고 있다.

※ 인터넷 서점 및 전국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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