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방어기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 마음은 너무열려서 불친절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릴 적 집이나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때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방어기제가 어린 나를 보호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방어기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방어기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 발전을 방해합니다. 이번 회부터는 내 마음 속에서 잘못 뿌리 내리고 있는 방어기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합리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느낀 실망감, 분노, 상처받은 기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난해하고도 논리적으로 보이는 변명으로 덮는 것

ex)  "그건 나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이솝우화》 중에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높이 달린 포도를 따 먹으려 뛰어오르다가 포기하고는 “저렇게 신 포도는 먹을 수 없어. 돼지나 주라지”라며 투덜거렸다는 내용이다. 여우는 힘이 모자라서 포도를 따지 못한 것을 포도의 맛 탓으로 돌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이나 능력 부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핑계를 붙이는 것을 합리화라 한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사실까지 왜곡하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하곤 한다.

● 세미나를 하다 보면 인내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자녀를 대하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를 깨닫고 좌절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부모들을 보곤 한다. 그들은 대부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것이 합리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성(性)에 대한 사회의 태도’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합리화는 빈번히 쓰인다. 최근 7학년과 8학년(한국의 중 1과 중 2에 해당)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미나에서도 합리화를 이용하는 부모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어머니는 딸이 십대를 위한 새로운 TV 프로그램 광고를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본 이야기를 했다. 광고에서는 남녀가 침대에서 서로 옷을 벗기며 입을 벌린 채 키스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어머니는 십대를 위한 프로그램 광고를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며 방송사를 원망했다. 그러자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듣는 노래의 가사가 온통 섹스와 커다란 엉덩이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하며 맞장구쳤다. 토론은 갑자기 뜨거워졌다. 모든 부모들이 자신들이 어렸을 때와는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지금은 성적 자극에 노출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는 데 동의했다.

얘기를 듣던 필자들은 “그렇다면 성과 관련하여 아이들에게 건강한 제한을 두는 것을 목표로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몇 명의 부모가 십대 아이들의 행동에 제한을 두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하며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일부 부모들의 논리는 십대 자녀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게 들렸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애들 친구들이 전부 그 프로그램을 봐요.”
“애들이 아는 사람들은 전부 아이팟으로 똑같은 음악을 들어요.”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애들은 성관계를 가질 거예요.”

이런 미성숙한 말은 부모들에게 두 가지 불편한 마음을 회피할 구실을 제공한다. 첫째, 행동을 제한하는 부모가 되면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자리를 박탈당하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 책임감 있는 수호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 힘들고 보람도 없는 일이다. 특히 십대 자녀에게는 말이다. 둘째, 성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무거운 화제다.

자녀의 갓 생겨나기 시작한 성에 대한 관심을 다루는 것은 여러 가지 감정을 휘젓는 민감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미성숙한 합리화’에 의존한다. ‘자녀의 성’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탐험해야 하는 지뢰밭보다는 그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서 ‘느끼다’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방어기제와 마찬가지로 합리화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생각과 기분을 없애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불편한 감각이 객관적이고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질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특히 상처와 상실감, 목표를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 당혹감이나 굴욕감, 눈앞에 놓인 상황을 다루지 못하는 무력감 등으로 가장 약해지는 때에 그러한 감정들에서 도망치기 위해 두드러지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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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nn by fiddle oak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도망치기 위해’라는 표현 때문에 합리화를 ‘스스로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내리는 결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방어기제들과 마찬가지로 합리화 역시 무의식에서 기인한다. 합리화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가끔씩은 감정적으로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불러낸다. 사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가끔은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고의로 사용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그건 말이 안 돼!”라고 외치는데 입으로는 변명을 늘어놓을 때가 그렇다. 또한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면 변명을 내뱉거나 자신이 믿는 ‘합리적인’ 말을, 즉 자신은 그것이 ‘사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닌 말을 내뱉기도 한다.   

출처 :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 도서출판 전나무숲

저자 : 매릴린 케이건 (Marilyn Kagan)

로스앤젤레스에서 25년 이상 개업의로 일해온 공인임상사회복지사(LCSW)이다. 전문 심리치료사와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자격).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남부 캘리포니아 정신분석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수련했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배우로도 활동했던 매릴린은 미디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심리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로스앤젤레스의 KFI 방송국에서 8년간 인기 토크쇼를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고민을 세심하게 상담해주었으며, 3년간 진행한 「매릴린 케이건 쇼(The Marilyn Kagan Show)」는 에미상 수상작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외에 E! 방송국의 「토크 수프(Talk Soup)」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주요 프로그램에 해설자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저자 : 닐 아인번드 (Neil Einbund)

공인임상심리치료사이자 결혼 및 가족 치료 전문가. 1988년부터 개업의로 일하며 가족 관계, 결혼 생활, 중독, 이혼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상담치료를 하고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1988년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주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에 있는 안티오크 대학교(Antioch University) 심리학과 석사 과정에서 교수로도 일했다. 지난 20년간 미국 유대대학교에서 부부 상담 프로그램인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하여’를 진행해왔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슬픔 치유 모임’을 주말마다 운영하고 있다.

※ 인터넷 서점 및 전국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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