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지위에 오를 나이가 되면 가족 앞에서나 부하 앞에서 자칫 강한 모습을 무의식중에 연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표정 자체가 자신의 나약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바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것입니다.

카운슬러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괴로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 와중에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 마음은 괴롭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를 표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몸과 마음이 분리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늘 웃는 얼굴로 부하나 동료를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자신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만듭니다. 괴로울 때는 우는 게 가장 좋습니다. 눈물이란 바로 그래서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려는 사고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또한 무언가를 연기하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입니다. 지쳤다면 스스로 지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지쳤다고 얘기해 보십시오.


by Sepulture {mood disorder} 저작자 표시비영리

부하에게 늘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곤란하지만,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은 강한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고, 괴로울 때 괴롭다고 하는 것은 괴로움을 완화시키는 특효약이기도 합니다.

  괴로울 신()’이라는 한자와 행복할 행()’이라는 한자는 그 모양이 참 비슷합니다. 이는 어쩌면 괴로움을 극복한 뒤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기나긴 인생을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병’, ‘좌천’, ‘뜻밖의 사고등으로 비탄에 빠져 의욕을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사도 한 사람의 인간일 따름입니다.

  동기부여가 저하되고 도저히 회사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그것은 어떤 상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죠.

  하지만 많은 인생 선배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그 괴로운 경험을 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좌절이나 역경을 겪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일본의 시인 사카무라 신민(坂村真民)이 지은 끝에라는 시는 이러한 슬픔과 행복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끝에 >

 
슬픔의
끝에
시가 탄생하고

슬픔의
끝에
빛이 비추고

슬픔의
끝에
손이 모아진다


슬픔은 당신 편입니다.

웃으라면 웃지요.
웃으라면 웃지요. by zziuni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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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angpah.tistory.com BlogIcon 양파로그 2010.04.27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와 서열 이런 게 아랫사람도 고달프게 하지만 윗사람도 고달프게 하는 하나의 예인 것 같아요.

    북유럽이 행복한 좌파(?) 복지국가로도 유명하지만 상하관계와 줄 세우기를 지양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우리나라도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바꿔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과장님 박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두를 동등하게 김아무게님, 박아무게님으로 부르는 '님'제도를 더 많은 직장이 도입한다면 좀 나아질 것도 같은..

    • Favicon of http://firforest.tistory.com BlogIcon 전나무숲 2010.04.27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쳐 지나가는 글에도 생각의 여운은 늘 남는 것 같습니다. 권위주의의 서열에서 벗어나서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아껴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말썽많은 부하’가 있게 마련입니다. 꼭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너무도 쉬워 보이는 일에서도 끊임없이 실수를 연발합니다. 그럴 때면 때로는 짜증이 날 때도 있고 부하가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봅시다.

‘문제의 여파는 언제나 약자가 떠맡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등교거부를 한다고 해봅시다. 부모는 1차적으로 그 원인을 아이나 혹은 학교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부모들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아이가 비록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상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줄 부모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등교거부’라는 형태로 문제가 폭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직장에 적용해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립니다. ‘말썽부리는 직원’이라는 것은 결국 조직의 문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구코 직원들과의 단체사진
구코 직원들과의 단체사진 by Seungho H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예를 들면 조직이 그러한 말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원천적으로 인력의 운용에 대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 말썽을 말썽으로 방치하게 하는 동료애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능력부족을 탓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조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개인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회사 내의 다양한 일들은 거의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해서는 조직의 문제도, 말썽 많은 부하의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말썽많은 부하를 미워하거나 왕따시키기 이전에 과연 자신이 상사로서 어떤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왜 ‘말썽많은 부하’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반성부터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반성해나가다 보면 분명 문제의 뿌리가 보일 것이고, 이를 통해 어떻게 말썽많은 부하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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