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쓰나미 현장기록(2) -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과자를 맛보다

전나무숲 2011. 6. 9. 07:00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로 인한 일본의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 원전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 …. 그러나 우리가 느껴야할 것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언제든 우리도 그와 같은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일본에 쓰나미가 발생한 후 현장으로 달려가 생생한 기록을 한 한국의 사진작가 류승일씨가 집필한 <쓰나미, 끝나지 않은 경고>를 통해서 그 처참한 상황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야하는지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편집자 주.

골조만 남은 건물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밴이 한 대 다가왔다. 잠시 후 밴에서 노부부와 중년의 부부 그리고 이십대의 여성이 내렸다. 천천히 건물을 보던 그들은 잠시 조용히 대화를 나누더니 도로 옆에 있는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무너진 건물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이 분들도 사진 앨범을 찾고 있는 건가?’

잠시 후 중년의 아저씨가 계단이 사라진 건물의 2층으로 어렵게 올라갔다. 나도 함께 건물 안으로 동행했다. 이 분들은 나의 동행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중년의 아저씨는 텅 비어버린 2층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3층으로 올라갔다. 나 역시 계속 그 뒤를 따라갔다. 아저씨는 3층에 올라가더니 여기저기 난장판이 된 집기에서 뭔가를 꺼냈다. 샴페인이었다.

‘지금 이거 하나 찾으려고 여기 온 건가?’

잠시 후 이십대의 여성이 뒤따라 올라오더니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 곁으로 다가가 찾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는 모두가 옥탑으로 향했다. 옥탑으로 향하는 발판의 절반이 부서져 있어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그들은 한참을 옥탑에서 발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뭔가를 잡고 올라갔지만 내려오자니 마땅치 않아 뛰어 내려와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3층에 있던 나는 촬영 장비를 잠시 안전한 곳에 두고 그들이 내려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저씨도 이십대 여성도 미안해하면서 도움을 받았다.

그들과 나는 2층으로 내려갔다. 땅바닥에 디지털 카메라가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채 뒹굴고 있었다. 이십대 여성은 그걸 주워 메모리카드를 열어보려 했으나 이미 심하게 부식되어 열리지 않았다. 그것마저 포기한 여성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2층은 전망이 참 좋았다. 비록 지금은 참 잔혹한 전망이지만 말이다. 나 역시 사람들을 따라 1층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할아버지는 계속 폐허더미를 뒤지면서 뭔가를 찾았다. 그러다가 2층에서 내려오는 나를 향해 무언가를 건넸다. 과자다. 쿠키라고 해야 하나? 쓰나미에 밀려들어온 개흙을 잔뜩 뒤집어 쓴 과자.
 
할아버지는 아직 상하지 않았으니 맛 한번 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거 참, 먹기 곤란하다. 한참을 망설이는데 날 향해 있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자꾸만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더 이상 망설이면 할아버지가 서운해 하실 것 같아 과자 봉지를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 과자, 오우~ 보통 맛이 아니다. 과자도 쿠키도 아닌 게 참 맛있다.

‘혹시 내가 여러 날 너무 굶주려서 그런가?’

나를 의심해보지만 정말 맛있었다.

“오이시!(おいしい. 맛있다는 의미의 일본어)”

할아버지가 날 보고 웃었다. 그의 찌글찌글한 주름 사이로 아이 같은 미소가 번지자 갑자기 눈물이 왈콱 차올랐다. 그리고 한없이 미안해졌다. 너무나도 맛있는데, 눈물이 났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다시 한 번 할아버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오이시!”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는 케이크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중년 아저씨의 이야기는 이랬다.

할아버지는 이 자리에서 평생 과자점을 운영하며 사셨다고 한다. 그리고 과자와 케이크 맛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사진 속 케이크는 할아버지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쓰나미로 생활 터전이며 평생을 바친 가게가 한순간에 사라졌고, 안전한 곳에서 지내려니 과자점 생각이 자꾸만 나 할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가족 모두가 시간을 내어 이 곳에 왔노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 곳에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쓰나미로 이 곳이 물에 잠기던 날 구워서 포장해놓았던 과자였단다.

그 때,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아들에게 전했다. 아들이 영어로 번역해주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이 과자점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하십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듯 말이죠. 돈은 없어도 좋은데, 마음을 담아 만든 과자들과 평생 사용해오던 제빵도구들이 이렇게 파묻혀 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서 살 수가 없다고 하세요.”

이런 게 장인정신인가. 진정되었던 마음이 다시 울컥 차올랐다.

나는 입에 물고 있던 과자보다 할아버지의 말에 몸둘 바를 몰랐다. 내가 만약 할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사진을 촬영했다면…. 재난으로 모든 걸 잃으신 할아버지가 그저 촬영이라는 본능에 이끌려 이 곳으로 온 나에게 살면서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듯했다. 나는 감동과 부끄러움에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그 순간 눈앞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단숨에 뒤집는 뭔가가 떠올랐다.

‘그래, 이 곳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던 곳이며,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희망의 땅이다. 비록 지금은 무너지고 쓰러져서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년 이맘때 다시 오리라. 그리고 할아버지의 과자점에서 꼭 케이크를 사먹어보리라.’

류승일

고등학생 시절, 학교 앞에서 방독면을 쓴 채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의 모습에 매료되어 보도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해외 사진 에이전시의 계약직 사진가로 활동하며 사진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학을 떠난 후 6년간은 서울에서 외신사 사진기자로 근무하면서 국내외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했으며, 국내 인터넷 뉴스 매체와 시사 주간지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현재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일대 주요 사건, 사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류승일 지음, 도서출판 전나무숲


                     ※ 인터넷 서점 및 전국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