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는데 쇼핑 정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듣는 브랜드의 화장품을 소개한다(프로그램 자체가 광고 같다). 피부 탄력과 보습에 효과가 높은 제대혈 줄기세포 배양액이 함유되어 있다면서 태반(플라센터)보다 효과가 훨씬 높다고 대놓고 선전한다.

제대혈이라탯줄? 깜짝 놀라서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니 가가와대학 의학부 부교수라는 여성이 나와서는 일본산 돼지에서 추출한 제대혈이라 아주 귀하며 태반보다 보습 효과가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녀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할 뿐 제대혈 추출물을 배합한 이 화장품을 피부에 바르면 보습과 탄력이 좋아진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제품 소개에 관해 따지면 나는 제대혈 추출물이 보습력에 좋다는 사실만 전달했다고 빠져나가면 그만이겠구나 싶었다. 피부과 의사가 화장품 광고에 관여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잡지나 신문 같은 지면 광고도 마찬가지다. 잡지나 신문에는 피부과 의사의 조언을 덧붙여 만든 광고기사가 흔히 등장한다. 그 기사들은 한결같이 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일정 기간 사용해서 사용 전과 사용 후의 피부 상태를 데이터화해 비교한다. 물론 수치를 속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사기다.

그런데 그 데이터에는 속임수가 숨어 있다. 에센스나 크림을 바르고 난 뒤 피부를 측정하면 실제로 수분량이나 유분량이 증가한다. 이번 미용검진에 이용된 VISIA를 제조하는 회사에서도 크림을 바른 뒤 측정하면 소프트 포커스 작용(주름이나 모공을 가리는 작용)으로 인해 75% 이상 주름이 줄어드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숫자 정보에 약하다. 아무래도 나처럼 수학과 과학에 약한 사람일수록 숫자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다이어트가 유행하게 된 데도 숫자의 힘이 컸다. 다이어트의 효과가 구체적인 숫자로 바뀌면 기쁨이 커지는 것이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잡지에서도 방송에서도 언뜻 보기에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앞세워 광고를 퍼붓고 있지만 그 데이터에는 다음과 같은 함정이 있다.

- 샘플 수가 적다.

- 다른 해석도 성립된다.

- 특정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 쥐 실험만으로 검증했다.

- 특정 조건에서 실험한 샘플에 치우쳐 있다.

- 실험 조건을 일부만 공개한다.

문제는 나와 같은 일반 소비자들은 그것을 일일이 검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럴 필요조차 없지만 말이다.

화장품에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화장품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어떤 독자는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있든 씻겨나가면 그만 아니냐고 반박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바르고 있는 동안 화장품에 가려진 피부는 메말라가고 늙어가기 때문이다.

출처 : <피부도 단식이 필요하다> (도서출판 전나무숲)

저자 : 히라노 교코

1945년 출생. 오차노미즈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튜빈겐대학에서 수학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독일어 번역작가로, 발터 뫼르스의 소설 《캡틴 블루베어의 13과 1/2 인생》을 번역해 2006년 독일 정부로부터 레싱번역상을 받았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난징의 진실(南京の眞實)》, 《균열(均熱)》, 《토니오 크뢰거》 등이 있고, 저서로는 《단가로 읽는 괴테(三十文字で詠むゲㅡテ)》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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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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