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방어기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 마음은 너무열려서 불친절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릴 적 집이나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때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방어기제가 어린 나를 보호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방어기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방어기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 발전을 방해합니다. 이번 회부터는 내 마음 속에서 잘못 뿌리 내리고 있는 방어기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부정

불안감을 줄이고자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는 전술로, 가장 원초적인 방어기제.

ex) “난 괜찮아, 우린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생각, 욕구, 충동,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무서운 장면에서 눈을 가리거나, 병을 진단받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믿으면서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거나, 심각한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오진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부정(Denial)은 필자들이 선정한 마음의 보호자목록에서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부정은 나머지 9가지 방어기제의 보스이자 킬리만자로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부정은 가장 흔히 사용되고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어기제들은 생각하지 않고 피하기, 묵살하기, 미루기, 기분 무시하기 등의 고유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부정이 자리하고 있다.

self-applied blindfold
self-applied blindfold by CrazyFas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잠시 현실을 점검해보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매일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살다 보면 고통, 괴로움, 불운, 힘든 도전, 소소하게 기분 상하는 순간들과 부딪치게 된다. 이런 것들은 행복이나 만족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가혹하고 암울한 현실을 직면할 때만 우리가 애타게 원하는 놀랍고 멋지고 특별하며 영광스럽고 기념비적이며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만족스러운 삶을 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 때, 일이 잘되지 않아서 결과를 확신할 수 없을 때 겁을 먹는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상황과 불편한 마음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그 일을 부정하고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숨은 괴물들과 맞닥뜨리면 자신의 내면이 허물어지고 잿더미로 변해버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어 있던 괴물은 시간이 지나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몇 달 동안 외면하던 피부 트러블이 악화되어 피부과 치료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거나, 바지가 점점 끼여가는 것을 느끼다가 1년 만에 체중을 재는 일, 평소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고 생각했던 여자 친구가 어느 날 감정을 터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여자 친구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한 아들이 어느 날 보니 왠지 불안해 보이고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다.

진짜든 상상이든, 마주치는 괴물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괴물과 직접 대면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괴물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겁이 난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어쩌면 문제나 상황에, 그로 인한 기분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실망감과 심적 고통,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무언가가 당신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실망과 좌절, 걱정,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보호해줄 수도 있는 대단히 영리하고 매혹적인 바리케이드를 설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진짜 기분을 옆으로 밀쳐놓고 충실한 마음의 보호자인 부정을 이용한다. 부정은 현실과 기분을 무시하고 묵살하는 아주 몹쓸 짓을 하지만, 가끔은 당신을 보호하고 방어해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실 부정이라는 친구가 없다면 당신은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 채 세균에 감염되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다음 회에서는 이러한 부정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자.

출처 :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 도서출판 전나무숲
 

저자 : 매릴린 케이건 (Marilyn Kagan)

로스앤젤레스에서 25년 이상 개업의로 일해온 공인임상사회복지사(LCSW)이다. 전문 심리치료사와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자격).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남부 캘리포니아 정신분석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수련했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배우로도 활동했던 매릴린은 미디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심리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로스앤젤레스의 KFI 방송국에서 8년간 인기 토크쇼를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고민을 세심하게 상담해주었으며, 3년간 진행한 「매릴린 케이건 쇼(The Marilyn Kagan Show)」는 에미상 수상작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외에 E! 방송국의 「토크 수프(Talk Soup)」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주요 프로그램에 해설자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저자 : 닐 아인번드 (Neil Einbund)

공인임상심리치료사이자 결혼 및 가족 치료 전문가. 1988년부터 개업의로 일하며 가족 관계, 결혼 생활, 중독, 이혼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상담치료를 하고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1988년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주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에 있는 안티오크 대학교(Antioch University) 심리학과 석사 과정에서 교수로도 일했다. 지난 20년간 미국 유대대학교에서 부부 상담 프로그램인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하여’를 진행해왔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슬픔 치유 모임’을 주말마다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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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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